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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책소개

절대미에의 갈구와 파멸 충동은 누구나의 마음 속에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러한 문제를 내면적으로 그리지 않고 '깅가쿠'라는 건축물을 통해서 순수 객관화 시켰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자신의 불완전한 점을 절대미에 대한 파괴로써 보상받으려는 주인공의 심리를 시적 독백으로 처리하여 허무의 미를 완성시키고 있다.

저자 소개

저자 : 미시마 유키오 (1925~1970)

미사마 유키오는 1925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여 명문 후예의 할머니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16세 때 이미 소설 『꽃이 만발한 숲』을 <문예문화>에 연재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1949년 장편소설 『가면의 고백』으로 문단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혀 나가기 시작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현대 일본 문학의귀재라고 일컬을 수 있다. 문단에 데뷔한 직후부터 조숙한 정신연력과 수려한 문장 구사력으로 문학 사고의 골수를 완벽하게 이뤄내고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특히 그의 문체와 구성은 전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70년 자위대의 각성을 외치며 할복 자살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랑의 갈증』『파도 소리』『영령의 소리』『풍요의 바다』등이 있다.

제1장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마이즈루 동북부의, 일본해로 튀어나온 쓸쓸한 곶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그곳이 아니라, 마이즈루 동쪽 근교에 위치한 시라쿠라는 마을이다. 절간에 입양되어 승적에 오른 후, 외딴 곶에 위치한 절의 주지가 되었고, 그곳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나를 낳았다.

나리우 곶의 절 부근에는 마땅한 중학교가 없었다. 이윽고 나는 부모님 슬하를 떠나 아버지 고향에 있는 숙부 집에 맡겨지게 되어, 그곳에서 하가시마이즈루 중학교에 통학하였다.

아버지의 고향은 햇빛이 유별나게 눈부신 곳이었다. 하지만 1년중, 11월이나12월 무렵에는 구름 한 점 없어 보이는 쾌청한 날씨에도 하루에도 너덧 차례나 소나기가 지나갔다. 나의 변하기 쉬운 성격은 그 땅에서 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월의 저녁 무렵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숙부 집 2층에 있는 공부방에서 건너편의 산을 바라보곤 하였다. 신록으로 덮인 산중턱이 석양을 받아, 벌판 한복판에 금병풍을 세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금각을 상상하였다.

사진이나 교과서에서 현실의 금각을 이따금 접하기는 하였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아버지가 들려준 금각의 환상이 훨씬 멋진 것처럼 여겨졌다. 아버지는 결코 현실의 금각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었다.

멀리서 논의 표면이 햇빛에 반짝이는 광경을 보거나 하면, 그것을 보이지 않는 금각의 투영이라고 생각했다. 후쿠이 현과 이쪽 교토 부의 경계를 이루는 기치자카 언덕은, 바로 동쪽에 위치한다.

그 언덕 언저리에서 해가 솟는다. 현실의 교토와는 반대 방향이지만, 나는 산간의 아침 햇살 속에서 금각이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금각은 곳곳에 모습을 나타내었으며, 더구나 그것이 실제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지방의 바다와도 흡사하였다. 마이즈루 만은 시라쿠 마을에서 서쪽으로 15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바다는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하니만 이 고장에는 언제나 바다의 예감과도 같은 것이 떠돌고 있었다.

바람에서도 때때로 바다냄새가 풍겼고, 바다가 거칠어지면 수많은 갈매기들이 피신하여 근처의 논에 내려앉았다.

몸도 약할 뿐더러, 달리기를 하여도 철봉을 하여도 남에게 뒤지는데다가, 선천적으로 말더듬 증세가 더욱더 나를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모두들 내가 절간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말더듬이 중이 더듬더듬 불경 읽는 흉내를 내며 놀려대었다. 옛날 이야기 속에 말더듬이 포졸이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그러한 이야기를 일부러 소리내어 내 앞에서 읽어 대곤 하였다.

말더듬 증세는 말할 필요도 없이, 나와 외계와의 사이에 하나의 장애로 작용하였다. 첫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첫 발음이, 나의 내계와 외계 사이를 가로막는 문의 자물쇠와도 같은 것이었으나, 자물쇠가 순순히 열린 적이 없었다. 일반 사람들은 자유로이 말을 구사함으로써, 내계와 외계 사이에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 둘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자물쇠가 녹슬어 버린 것이다.

말더듬이가 첫마디를 소리내기 위해서 몹시 안달하는 동안은, 마치 내계의 농밀한 끈끈이로부터 몸을 떼어 내려고 버둥거리는 새와도 흡사하다. 겨우 몸을 떼어 냈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물론 외계의 현실은 내가 버둥거리는 동안,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 줄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다려 주는 현실은 이미 신선한 현실이 아니다. 내가 애써서 간신히 외계에 도달하여 보아도, 언제나 그곳에는 순식간에 변색되어 신선하지 못한 현실, 거지반 썩든 냄새를 풍기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소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두 종류의 상반된 권력 의지를 품게 된다. 나는 역사 중에서 폭군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였다. 내가 말더듬이에다가 과묵한 폭군이라면, 신하들은 내 안색을 살피며 항상 주눅이 들어 지내게 되리라. 나는 명확하고 유창한 말투로 자신의 잔학성을 정당화시킬 필요조차 없다. 나의 무언만이 모든 잔학성을 정당화시키리라. 이런 식으로 평소에 나를 업신여기는 교사나 학우들을 모조리 처형시키는 공상을 즐기는 한편, 나는 또한 내면 세계의 제왕이자 조용한 체념에 잠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공상도 즐겼다. 외모는 보잘것없었지만 나의 내계는 누구보다도, 이토록 풍요로웠다.

무언가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세상 어디엔가, 아직 내 자신도 모르는 사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히가시마이즈루 중학교는, 넓은 운동장을 앞에 두고 길게 늘어선 산들에 둘러싸인 신식의 밝은 건물이었다.

5월의 어느 날, 중학교 선배인, 마이즈루 해군 사관 학교의 생도 하나가 휴가를 받아서 모교에 놀러 왔다.

그는 햇볕에 잘 탄 피부에, 깊게 눌러쓴 제모의 차양 밑으로 멋진 콧날을 드러낸 모습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젊은 영웅이었다. 후배들 앞에서 고된 규율투성이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비참한 생활을, 마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야기하는 듯한 어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일거수 일투족이 긍지에 넘쳤고, 젊었음에도 겸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제복 가슴의 줄무늬를, 마치 바닷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뱃머리의 조각처럼 활짝 펼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