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말기에 교토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그것은 거의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목격자는 나 하나가 아니다. 내 곁에는 쓰루카와도 있었다.
정전일인 어느 날, 나는 쓰루카와와 함께 남선사에 갔다. 아직 남선사를 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넓은 드라이브웨이를 가로질러, 인클라인(역자주: 비탈, 사면)에 걸쳐진 나무다리를 건넜다.
5월의 맑게 갠 날이었다. 인클라인은 대부분 잡초에 뒤덮여 있었다. 그 잡초에는 희고 작은 십자형의 꽃들이 바람에 산들거리고 있었다. 인클라인의 경사면이 시작되는 곳까지 더러운 물이 고여, 이쪽 둔덕의 벚나무 가로수의 그림자를 완전히 적시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작은 다리 위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쟁 중의 추억에는 군데군데, 이러한 짧고 무의미한 시간이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으며 지내던 방심의 짧은 시간이, 때때로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처럼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러한 시간이 마치 통렬한 쾌락의 기억처럼 선명한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정말 좋군."
하고 나는 또, 아무런 의미도 없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응."
쓰루카와도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둘이는 이러한 2, 3시간이 자신들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넓은 자갈길이 계속되는 곁으로 아름다운 물풀을 흔들며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었다. 이윽고 유명한 산문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절 안에는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신록 속으로 수많은 탑두의 기왓장이, 녹슨 은빛 책을 덮어 놓은 듯이 튀어나와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이 순간에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있어서 전쟁은 인간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기괴한 정신적 사건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이시카와 고에몬(역자주:이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전설적인 도적)이 그 누상의 난간에 발을 걸치고, 활짝 핀 꽃들을 즐겼다는 곳은 아마도 이 산문이리라, 우리들은 아이들 같은 기분에서, 이미 꽃이 져 버린 계절이었지만, 고에몬과 같은 포즈로 경치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되는 입장료를 내고는, 색이 완전히 검게 변색되고 경사가 급한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거의 다 올라간 곳은 층계참에서 쓰루카와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것을 보고 웃던 나도 곧이어 부딪쳤다. 둘이는 한 바퀴 돌아서 계단을 올라가, 누상으로 나갔다.
동굴같이 좁은 계단에서 웅장한 경관 앞으로 단숨에 몸을 드러내는 긴장감은 상쾌하였다. 무성한 벚나무와 소나무, 그 건너의 가옥들 저편에 위치한 헤이안 신궁의 숲, 교토 시가지의 끝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아라시 산, 기타노카타, 기부네, 미노노우라, 곤피라 등의 산들이 늘어선 모습, 이러한 경치를 마음껏 즐기고 나서, 절간의 도제답게, 신발을 벗고 공손히 당리로 들어갔다. 어두운 어당에는 24장의 다다미를 깡아 놓은 곳에, 석가상을 중앙으로 16나한들의 금빛 눈동자가 어둠에 빛나고 있었다. 여기를 오봉류라고 한다.
남선사는 같은 임제종이라도, 상국사파의 총본산이다. 우리는 동종이파의 절에 소속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반 중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둘이는 안내서를 손에 들고 가리노탄유 모리노부(역자주:에도 시대 초기의 화가)와 도사호겐 도쿠에쓰가 그렸다는 선명한 색채의 천장화를 둘러보았다.
천장의 한쪽에는, 비상하는 천인과, 그가 연주하는 비파와 피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쪽에는 하얀 모란을 받쳐 든 가릉빈가가 날개 치고 있었다. 그것은 천축설산에 살며 기묘한 소리를 내는 새로, 상반신은 탐스러운 여자 모습을 하고, 하반신은 새 모습이었다. 또한 중앙의 천장에는 금각 꼭대기에 있는 새와 같은 종류이지만, 그 위엄에 넘치는 금빛 새와는 전혀 달리, 화려한 무지개 같은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석존상 앞에서, 우리는 무릎 꿇고 합장하였다. 어당을 나섰다. 하지만 누상에서 떠나기 싫었다. 그래서 올라왔던 계단 옆의 남쪽으로 향한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 아름답고 자그마한 색채의 소용돌이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 보고 온 천장화의 천연색 잔상인 듯 여겨지기도 하였다.
풍부한 색이 응집된 느낌은, 가릉빈가를 닮은 새가 눈앞의 신록이나 소나무 숲 어딘가의 가지에 숨어서, 화려한 날개 끝을 살짝 엿보이고 있는 듯하였다.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들 눈 아래에는, 길 건너로 천수암이 있었다. 나지막한 나무들을 간소하게 심어 놓은 한적한 정원을, 네모난 돌의 모서리만 맞대어 늘어놓은 돌길이 꼬불꼬불 가로질러,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방으로 통하고 있었다.
방안에는 장식벽과 선반이 모두 보였다. 그곳은 자주 헌차를 행하거나, 다과회 장소로 대여되는 듯, 주홍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젊은 여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것은 그것이었다.
전쟁 중에 이토록 화려한 기모노의 여자 모습을 보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런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가는, 길가에서 주의를 받고 되돌아가야만 하리라. 그럴 정도로 그 복장은 화려하였다. 자세한 무늬는 보이지 않았지만, 옥색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져 있거나 새겨져 있었고, 주홍색 허리띠에도 금실이 빛나는 모습이, 과장하여 말하자면, 주위가 빛나고 있는 듯하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기에, 그 하얀 옆얼굴이 독보여, 정말로 살아 있는 여자인지 의심스러웠다.
"저건, 도대체, 살아 있는 건가?"
"나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인형 같군."
쓰루카와는 난간에 가슴을 딱 밀어붙인 채, 눈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때 안에서, 군복 차림의 젊은 육군 사관이 나타났다. 그는 예의바르게 여자의 한두 자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여자와 대면하였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가만히 마주 앉아 있었다.
여자가 일어섰다. 조용히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여자는 찻잔을 받쳐 들고, 산들바람에 긴 소맷자락을 날리며 돌아왔다. 사내 앞에서 차를 권하였다. 예법대로 묽은 차를 권하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사내가 무엇인가 말했다. 사내는 좀처럼 차를 마시지 않았다. 사내가 무엇인가 말했다.
사내는 좀처럼 차를 마시지 않았다. 그 시간이 기묘하게도 길고, 기묘하게도 긴장되는 듯이 여겨졌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다음이다. 여자는 자세를 바로 한 채, 갑자기 옷깃을 풀었다. 내 귓전에는 뻣뻣한 허리띠를 안쪽에서 잡아당기는 비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하얀 가슴이 드러났다. 나는 숨을 죽였다. 여자는 하얗고 풍만한 젖가슴의 한쪽을, 그대로 자기 손으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