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두운 새벽길을 곧장 달렸다. 돌멩이도 나의 발길을 방해하지 못하였고, 어둠이 내 앞에 자유자제로 길을 터 주었다.
얼마 안 가면 넓은 길이 나와, 시라쿠 마을의 읍인 야스오카 부락 주변으로 이어진다. 그 곳에 한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 둥치는 아침 이슬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밑에 몸을 숨기고, 부락 쪽에서 우이코가 자전거로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기다려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기는 했지만, 느티나무 그늘에서 숨을 돌리고 나니, 자신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나에게는, 외계라는 것과 너무도 무관하게 살아왔던 탓으로, 일단 외계로 뛰어들면 모든 것이 쉽고 가능해지리라는 환상이 있었다.
숲모기가 내 다리를 물었다. 여기저기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길 쪽을 엿보았다. 멀리 하얗고 희미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새벽의 색깔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우이코였다.
우이코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양이었다.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었다. 자전거는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다가왔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나는 자전거 앞으로 뛰쳐나갔다. 자전거는 위태롭게 급정거하였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이 돌로 변하고 만 것을 느꼈다. 의지도 욕망도 모두가 돌로 변하였다. 외계는, 나의 내면과는 무관하게, 다시금 내 주위에 확고히 존재하고 있었다. 숙부 집을 빠져나와, 흰 운동화를 신고, 어두운 새벽길을 이 느티나무 그늘까지 달려온 나는, 단지 자신의 내면을 무작정 달려온 것에 불과하였다.
어두운 새벽 속에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마을의 지붕들에도, 시커먼 나무들에도, 아오바 산의 시커먼 산꼭대기에도, 눈앞의 우이코조차도, 끔찍할 정도로 완전히 의미가 결여되어 있었다. 내가 관여할 틈도 없이 현실은 이미 부여되어 있었으며, 더구나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무게로, 무의미하며 크고 어두운 이러한 현실은 나에게 부여되어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말이 아마도 이 상황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리라고, 여느 때처럼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 특유의 오해이다. 행동이 필요한 때에, 언제나 나는 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입에서 말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거기에 신경을 쓰다가 행동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에게는 행동이라는 휘황찬란한 존재가, 언제나 휘황찬란한 말을 동반하고 있으리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이코는 처음에는 겁을 먹은 듯하였으나, 나를 알아차리고는 내 입만을 주시했다. 그녀는 아마도, 어두운 새벽 속에서 무의미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구멍, 자그만 들짐승의 소굴처럼 지저분하고 모양 없는 작은 구멍, 즉 내 입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외계로 이어지는 힘이 무엇 하나 튀어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하였다.
"뭐야, 이상한 짓도 다 하네. 말더듬이 주제에."
하고 우이코가 말했으나, 그 목소리에는 아침 바람과도 같은 단정하고 상쾌한 느낌이 있었다. 그녀는 벨소리를 울리며, 페달에 다시 발을 올렸다. 돌멩이를 피하듯이 나를 피하여 우회하였다. 사람이라곤 그림자 하나 없는데도, 멀리 논 건너편으로 사라져 가는 우이코가 이따금 조롱하듯 울리는 벨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날 밤, 우이코의 고자질로, 그녀의 엄마가 내 숙부 집에 찾아왔다. 나는 평소에 온화하던 숙부에게서 심한 질책을 당했다. 나는 우이코를 저주하며 죽기를 바랐는데, 수개월 후에 그 저주가 이루어졌다. 이후로 나는 남을 저주하는 일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자나깨나 나는 우이코가 죽기를 바랐다. 내 수치의 입회인이 없어져 버리기를 바랐다. 증인만 없다면, 지상에서 수치는 근절되리라. 타인은 모두 증인이다.
그러나 타인이 없으면 수치라는 것도 생기지 않는다. 나는 우이코의 모습, 어두운 새벽 속에서 물처럼 빛을 발하며 내 입을 잠자코 주시하던 그녀의 눈 뒤에서, 타인의 세계--즉, 우리들을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자진하여 우리들의 공범이 되며 증인이 되는 타인의 세계--를 본 것이다. 타인이 모두 멸망하여야 한다. 내가 정말로 태양을 향하여 얼굴을 들기 위하여는, 세계가 멸망하여야 한다...
고자질을 한 2개월 후, 우이코는 해군 병원을 그만두고 집 안에 틀어박혔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가을이 끝나 갈 무렵, 그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들은 이 마을에 해군 탈영병이 숨어들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단지 점심 무렵 촌사무소에 헌병이 왔다. 그러나 헌병이 오는 것은 신기해할 일도 못되었기에, 별다른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날은 10월 말의 맑게 갠 하루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학교에 다녀와, 밤 공부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등불을 끄려다가 내려다본 길 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떼처럼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 입구에는 학교 친구 하나가 와서, 자다 말고 일어나 나온 숙부, 숙모와 나에게, 눈을 둥그렇게 하고 소리쳤다.
"지금, 저쪽에서, 우이코가 헌병에게 잡혔어! 같이 가자!"
나는 신발을 걸쳐 신고 뛰쳐나갔다. 달 밝은 밤이라, 수확이 끝난 노의 군데군데에 볏단이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숲의 그늘 한쪽에,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검정색 양장 차림의 우이코가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얼굴이 몹시 하앴다. 주위에는 너덧 명의 헌병들과 부모가 있었다. 헌병 하나가 도시락 보자기 같은 것을 들이대며 호통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리저리로 얼굴을 움직이며, 헌병에게 사과하기도 하고, 딸을 질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우리들은 밭 건너편 논둑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점점 불어나, 조용한 가운데 서로의 어깨가 부딪쳤다. 쥐어짜 놓은 듯이 조그만 달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친구가 내 귓전에 대고 설명하였다.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집에서 빠져나와 인근 부락으로 가려던 우이코가, 잠복 중인 헌병에게 붙잡혔다는 것. 그 도시락은 탈영병에게 갖다 주려던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 탈영병과 우이코는 해군 병원에서 사귀게 되어, 그 때문에 임신한 우이코가 병원에서 쫓겨났다는 것. 헌병은 탈영병이 숨어 있는 곳을 대라고 윽박지르고 있지만, 우이코는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다는 것...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나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우이코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붙잡힌 광녀처럼 보였다. 달빛 아래에서, 그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토록 거부로 가득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자신의 얼굴을,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이코의 얼굴은 세계를 거부하고 있었다. 달빛은 그녀의 이마와 콧등과 얼굴 위에 가차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부동의 얼굴은 다만 그 빛에 씻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