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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눈을 움직이고 조금만 입을 움직인다면, 그녀가 거부하려는 세계는 그것을 기화로 한꺼번에 밀어닥치리라.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얼굴을 주시하였다. 역사는 거기에서 중단되었고, 미래를 향하여도 과거를 향하여도 무엇하나 말을 건네지 않는 얼굴. 그러한 불가사의한 얼굴을 우리들은 방금 잘려 나간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서 보는 때가 있다.

신선하고 풋풋한 색을 띠면서도, 성장은 거기에서 멈추고, 예기치 못한 바람과 햇빛을 받아, 원래 자신의 소속이 아닌 세계로 돌연히 드러난 그 단면에, 아름다운 나뭇결이 그려낸 불가사의한 얼굴. 단지 거부하기 위하여 이쪽 세계로 향하여진 얼굴...

나는 우이코의 얼굴이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은, 그녀의 생애에 있어서도, 그것을 보고 있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도 다시는 없으리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 얼굴이 유지된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돌연히 변화가 생긴 것이다.

우이코는 일어섰다. 그때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빛에 하얀 앞니가 빛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더 이상, 이 변모에 관하여 기술할 수가 없다. 일어선 우이코의 얼굴이 환한 달빛에서 벗어나, 나무 그림자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우이코가 배신을 결심한 때의 변모를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자세히 보았더라면, 나에게도 인간을 용서할 마음이, 모든 추한 것들까지도 용서할 마음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우이코는 인근 부락인 가하라 산 그늘을 가리켰다.

"금강원이다!"

하고 헌병이 소리쳤다.

그러자 나에게도 어린애 같은 축제 분위기의 즐거움이 생겨났다. 헌병들은 편을 나누어 금강원을 사방에서 포위하기로 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협력이 요청되었다. 심술궂은 호기심에서, 나는 다른 5, 6명의 소년들과 함께, 안내하는 우이코를 앞세워 가는 선두 그룹에 가담하였다. 달빛이 비치는 길을, 우이코가 헌병들과 함께 선두에 서서 걸어가는, 그 확신으로 가득한 발걸음에 나는 놀랐다.

금강원은 유명하다. 그것은 야스오카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산그늘에 위치한, 다카오카 친왕이 몸소 심은 비자나무와, 히다리 진고로(역자주: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서 활동하였다는 유명한 석공. 그러나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옛날이야기의 등장 인물)가 세웠다고 전하여지는 우아한 삼층탑이 있는 이름난 절이다. 여름에는 자주 그 뒷산의 폭포를 맞으며 놀았다.

강가에 본당의 담이 있다. 허물어진 토담 위에 억새풀이 무성하여, 그 하얀 이삭이 밤중에도 윤기 있게 보였다. 본당의 문 옆에는 산다화가 피어 있었다.

일행은 묵묵히 강을 따라 걸었다.

금강원의 어당은 좀더 올라간 곳에 있었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에 삼층탑이, 왼편에 단풍나무 숲이 있고, 그 안쪽으로 105단의 이끼 낀 돌계단이 솟아 있다. 석회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쉬웠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기 전에 헌병이 뒤돌아보며 손짓으로 일행의 발길을 멈추어 세웠다. 옛날에는 여기에 운케이, 단테이(역자주:가마쿠라 초기의 불상 조각가.

단케이는 운케이의 장남)가 세운 인왕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쓰즈라 골짜기의 산들은 금강원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숨을 죽였다.

헌병은 우이코를 재촉하였다. 그녀 혼자서만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잠시 후 우리가 그 뒤를 따랐다. 돌계단의 아래쪽은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중간보다 위쪽은 달빛 아래에 있었다. 우리들은 돌계단 아래쪽의 그늘 이곳저곳에 몸을 숨겼다.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달빛에 검게 보였다.

돌계단 위에는 금강원의 본전이 있고, 그 왼쪽에 비스듬히 복도가 설치되어, 신락전과 같은 빈 어당으로 통하고 있다. 그 빈 어당은 공중으로 높게 세워진 건축물로, 가면극 무대를 본떠서 짜여진 수많은 기둥과 횡목들이 벼랑 아래에서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어당도 복도도, 이를 지탱하는 기둥들도, 비바람에 시달려서 청아하고 하얗게 변한 모습이, 마치 백골처럼 보였다. 단풍이 한창일 때에는, 단풍 색깔과, 이 백골과도 같은 건축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지만, 밤이 되면 군데군데 얼룩처럼 달빛을 받은 하얀 기둥들은, 괴이하게도 보이고, 요염하게도 보였다.

탈영병은 무대 위의 어당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헌병들은 우이코를 미끼삼아 그를 잡으려고 하였다.

우리 증인들은 그늘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10월 하순의 차가운 밤공기에 싸여 있으면서도, 내 뺨은 뜨거웠다.

석회암으로 쌓은 105개의 돌계단을 우이코 혼자서 올라갔다. 관인처럼 자연스럽게...검은 양장과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아름다운 옆모습이 유달리 희게 보였다.

달과 별, 밤하늘의 구름과, 즐비한 삼나무 능선이 하늘과 접하는 산, 얼룩 같은 달 그림자와 허옇게 솟아 있는 건물, 이러한 것들 속에서, 우이코의 배신이라는 투명할 정도로 맑은 아름다움이 나를 도취시켰다. 그녀 혼자서 가슴을 펴고 이 하얀 돌계단을 걸어올라갈 자격이 있었다. 그 배신은, 별이나 달, 혹은 창 모양의 삼나무와 동일한 것이었다. 즉, 우리 증인들과 함께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자연을 받아들이는 행위였다. 그녀는 우리들의 대표자로서 그곳을 걸어올라간 것이다.

숨이 가빠 오는 가운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신 행위로 인하여 드디어 그녀는, 나까지도 받아들였다. 그녀는 이 순간에야말로 내 것이다!'

...사건이란 우리들 기억 속의 어느 지점에서인가 실추하고 만다. 105단의 이끼 낀 돌계단을 올라가는 우이코는 아직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그 돌계단을 올라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윽고 그녀는 돌변하고 말았다. 돌계단을 다 올라간 우이코는, 다시 한 번 나를, 우리들을 배반한 것이었다. 그 이후의 그녀는 온 세상을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고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단지 애욕의 질서에 굴복하여, 한 남자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건을 낡은 석판 인쇄와도 같은 광경으로밖에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우이코는 복도를 건너가, 어당 속의 어둠을 향하여 누군가를 불렀다.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이코는 무엇인가 말을 걸었다. 사내는 돌계단의 중간을 향하여 권총을 쏘았다. 그에 응사하는 헌병들의 권총이, 돌계단 중간의 숲 속에서 발사되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총을 겨누더니, 복도 쪽으로 도망치려는 우이코의 등에 몇 발인가 연달아 쏘았다. 우이코는 쓰러졌다. 사내는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발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