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ыбрать главу

--헌병들은 물론, 모두가 앞을 다투어 돌계단을 뛰어올라 두 사람의 시체로 몰려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단풍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잠자코 있었다. 하얀 기둥들이 종횡으로 얽히어 내 머리 위에 솟아 있었다. 그 위에서 널빤지가 깔린 복도를 밟아 대는 신발소리가 아주 경쾌하게 들려왔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손전등 불빛이 두세 가닥, 난간 건너에 있는 단풍나무의 가지까지 비치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먼 옛날의 사건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둔감한 사람들은 피가 흐르지 않으면 허둥대지 않는다. 하지만, 피가 흘렀을 때에는 비극은 끝나 버린 다음인 것이다. 어느 새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모두가 떠나 버리고 혼자 남은 내 주위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하였고, 아침 햇살이 단풍나무의 밑까지 깊숙히 비치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몸을 부르르 떨고는, 몸의 이곳저곳을 비볐다. 추위만이 몸 속에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추위뿐이었다.

* * *

이듬해 봄방학 때에, 아버지가 국민복에 가사를 걸친 모습으로 숙부 집을 찾아왔다. 나를 2, 3일 교토에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폐병은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기에 나는 그 수척한 모습에 놀랐다. 나만이 아니라, 숙부 내외도 교토에 가는 것을 말렸으나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나를 금각사 주지에게 소개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물론 금각사를 방문하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일부러 활기 있는 척하여도 누가 보나 중환자로 보이는 아버지와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직 본 적도 없는 금각에 드디어 접할 순간이 다가옴에 따라, 내 마음에는 주저가 생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각은 아름다워야만 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금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금각의 미를 상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소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는, 나도 금각에 관하여 통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술 서적들은 금각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서원사 가문으로부터 기타야마라고 불리는 저택을 이어받아, 여기에 대규모 별장을 세웠다. 그 주요 건축물은, 사리전, 호마당, 참법당, 법수원 등의 불교 건축과, 신전, 공경간, 회소, 천경각, 홍북루, 천전, 간설정 등 주택 관계의 건축이었다. 사리전은 가장 공을 들여 세운 것으로, 훗날 금각이라고 불리게 된 건물이다. 언제부터 금각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확실히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오닌의 난 이후인 듯 분메이(역자주:1469년부터 1487년까지) 무렵에는 상당히 보편적으로 금각이라 불렀다.

금각은 넓은 연못--경호지--에 면한 3층 누각의 건축으로서,1398년경 완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1, 2층은 침전 모양으로 만들어 덧문을 달았고, 3층은 4면 3자의 순수한 선당, 불당식으로 만들어, 중앙에 잔당호(역자주:틀을 짠 다음 얇은 판자를 붙인 문),좌우에 화두창(역자주: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창)을 달았다.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로 이은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금동의 봉황이 올려져 있다.

또한 연못에는 ㅅ자형 지붕을 올린 수청이라는 낚시터를 돌출시켜, 전체의 단조로움을 없앴다. 지붕의 경사는 완만하며, 처마는 산뜻하게, 가느다란 나무로 경쾌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내는 등, 주택식 건축에 불당 양식을 가미하여 조화를 이룬 정원 건축의 수작으로서, 귀족 문화를 도입한 요시미쓰의 취미와 당시의 분위기를 잘 전하여 주고 있다.

요시미쓰의 사후, 기타야마 저택은 유언에 따라 선찰로 바뀌어, 녹원사로 불리게 되었다. 그곳의 건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황폐되거나 했지만, 금각만은 다행히도 남아 있다...

밤하늘의 달처럼, 금각은 암흑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꿈꾸는 금각은, 그 주위에 몰려드는 어둠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름답고 가날픈 기둥의 구조가, 안으로부터 희미한 빛을 발하며 고요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이 건축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더라도 아름다운 금각은 잠자코 섬세한 구조를 드러내 보이며 주위의 어둠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

나는 또한 그 지붕 꼭대기에서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시달려 온 금동 봉황을 생각했다. 이 신비스러운 금빛 새는 알리지도 않고 날갯짓도 하지 않고, 자신이 새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날지 못할 듯이 보이는 것은 착각이다. 다른 새들이 공간을 난다면, 이 금으로 만든 봉황은 번쩍이는 날개를 펴고 영원히 시간 속을 나는 것이다. 시간이 그 날개에 부딪힌다. 날개에 부딪혀서 뒤쪽으로 흘러간다. 날아가기 위하여, 봉황은 단지 부동의 자세로 눈을 부라린 채, 날개를 높이 들고 꼬리 깃을 휘날리며, 당당한 금빛의 양 다리를 힘차게 버티고 있으면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에게는 금각 그 자체도 시간의 바다를 건너온 아름다운 배처럼 생각되었다. 미술 서적에서 말하는 '벽이 적고, 바람이 잘 통하는 건축'이라는 설명이 배의 구조를 상상하게 하였으며, 이 복잡한 3층의 지붕 달린 배가 임하고 있는 연못은 바다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금각은 수많은 밤을 노 저어 왔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항해. 그리고 낮 동안은, 이 신비스러운 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닻을 내린 채 뭇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밤이 오면 주위의 어둠으로부터 힘을 얻어, 지붕을 돛처럼 부풀려 출범하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미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버지는 시골의 소박한 승려로, 어휘도 부족하기에, 단지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만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곳에 이미 미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다.

그렇다고 해서 금각이 나에게 결코 하나의 관념은 아니었다. 산으로 막혀 있다고 해도, 보고 싶으면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물체였다. 미는 그처럼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눈에도 확실히 비치는 하나의 물체였다. 여러 가지로 변모하는 가운데, 불변의 금각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으며 믿고 있었다.

금각은 내 손 안에 잡히는 작고 정교한 세공물처럼 생각되는 때도 있었고, 혹은, 하늘 높이 끝없이 솟은 거대한 괴물과도 흡사한 건물이라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다. 미라는 것은 작지도 크지도 않고, 적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소년인 나에게는 없었다. 그렇기에 여름철의 꽃들이 아침 이슬에 젖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는 듯이 보일 때, 금각처럼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한, 구름이 산 저편을 가로막고 천둥을 머금은 채 암담한 테두리만을 금빛으로 번쩍일 때에도, 그 웅대한 광경을 보며 금각을 연상했다. 심지어는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마음 속으로, '금각처럼 아름답다'고 형용하기에 이르렀다.